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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임D
어떤 여자가 자기는 매우 개인적이며 독자적인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늙어갈 무렵 암에 걸렸다. 너무 심하게 마르고 기운 없어 해서 주변 사람이 그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리고 내일 수술한다고 칼 잡을 의사가 밤중에 그 여자의 입원실로 찾아왔다. 내일 어디어디를 잘라낼 거라고 설명했다. 그 여자가 말했다.“이왕 배를 여는 데 왕창 잘라내주시오. 나는 늘 내 창자들이 쓸데없이 긴 게 불만이었소. 내가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내장은 크로마뇽인과 다름없지 않소. 나는 나의 내장을 디자인하고 싶소. 십이지장에서 항문까지 직선으로 연결하고 나머지 창자들은 잘라서 버려주시오. 나는 이제까지 살면서 긴 창자 때문에 쓸데없이 섬유소를 먹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왔소. 이왕 배를 열 거면 나를 도와주시오.”의사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말했다.“칼은 내가 쥐고 어디를 잘라낼지는 내가 결정합니다.”그 여자가 말없이 생각했다.‘그래서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건가? 내 창자도 내 맘대로 못하네.’2년 넘게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여자는 여전히 병원에 다니고 있었다. 그냥 살아만 있을 뿐 전혀 독자적이고 개인적인 인생은 아니었다. 그 여자가 쭉 써온 글을 책으로 내겠다고 준비 중이던 출판사 사람들이 찾아왔다.“책 제목을 뭐라고 할까요?”정신이 파도치듯 들락거리는 중에 그 여자가 비장하게 말했다.“점선뎐! 이 책은 나의 전기다. 이제까지 낸 책들과는 다르다.”그 여자는 그 순간 아주 어릴 때 외할머니 방에서 본, 여자들의 전기에 관한 책들을 떠올렸다. 옥단춘뎐, 숙영낭자뎐……. 그 여자들과 자기가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파도에 떠밀려 가는 정신을 겨우 추스르면서 생각했다.
화가 김점선의 에세이. 책에 나온 많은 작품들이 좋았는데
이미지 파일로는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가지고 있는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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