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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자씨의 방귀

corgan 2010. 4. 7. 01:16
내가 몸담은 대학에서는 2011년부터 우수 외국 학술지나 그에 준하는 국내 학술지, 예를 들어 기생충학잡지 같은 곳에 논문을 실어야만 업적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업적점수를 못 채우면 승진은 물론 재임용에서도 탈락하므로 앞으로는 좋은 논문이 아니면 써봤자 소용이 없게 되었다. 대체 좋은 논문이 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혹시 있을까봐 여기다 그 비결을 공개한다.

첫째, 제대로 된 실험결과가 있어야 한다. 훌륭한 실험결과만 있으면 좋은 논문을 쓰기가 쉽다. 결과가 그다지 신통치 않으니 다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라며 골치를 썩이는 게 아니겠는가. 예를 들어 토끼가 방귀를 뀌었다는 논문을 쓰려면 토끼가 앉았던 자리에서 방귀냄새가 가장 심했고, 소리가 그쪽에서 나는 걸 들었다는 증인이 있고, 토끼 주위의 메탄가스 농도가 가장 높았다는 결과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실험은 하나도 안해 놓은 채 “토끼가 방귀 뀌었다”는 여우의 말만 가지고 논문을 쓰려 한다면 절대 좋은 논문이 나오지 않는다.

둘째,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한 논문 안에서 실험 결과들이 서로 상충되어서는 안된다. 앞부분에서는 토끼가 밖에 나가면서 방귀를 뀌었는데 그걸 비닐봉지에 담았다고 했다가, 중간부분에서는 토끼가 의자에 앉아서 방귀를 뀌었다고 하고, 끝부분에서는 토끼가 서랍장에 들어가 방귀를 뀌었다고 하면 읽는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토끼가 방귀를 뀌었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급기야 토끼가 방귀를 뀐 다음에 두 개로 나눠 비닐봉지에 담았다는 초현실적인 얘기까지 나온다면, 이런 논문을 도대체 왜 썼는지 화를 내는 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리라.

셋째, 선입견을 갖지 말아야 한다. 위대한 연구는 우연히 이루어지기도 한다. X레이의 존재를 처음 본 뢴트겐이 “내가 뭔가를 잘못했겠지”라고 생각했다면 그는 무명의 과학자로 생을 마감했을 거다. 연구에 선입견이 있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토끼가 방귀를 뀐 게 틀림없다고 예단하고 “토끼가 뀌었다”는 자백을 받아낼 때까지 여우의 목을 비틀어 논문을 쓴다면, 유명 학술지는커녕 어느 학술지도 그 논문을 받아주지 않을 거다. 더구나 그게 평소 토끼를 싫어한 높은 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한 짓이라면, 그를 더 이상 학자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

넷째, 평소 좋은 논문을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 연구 잘하기로 유명한 학자가 학술지에 논문을 보내오면 편집자는 “뭔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늘 조작이나 일삼는 학자의 논문을 의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미네르바가 경제파탄의 원인이고, 때문에 광우병이 생겨났다고 우기던 사람이 “토끼가 방귀 뀌었다”는 논문을 편집자에게 제출했다면 아마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박박 찢어버릴 것이다. “지가 뀌어놓곤 왜 토끼한테 뒤집어씌워?”라면서.

좋은 논문을 쓰는 비결은 이렇게 간단하다. 하지만 세상엔 이것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즉 평소 연구를 열심히 하지도 않는 데다 실험결과도 없고 최소한의 일관성도 없으면서 선입견에 가득찬 논문을 쓰는 사람이 종종 있다. 내 친구 금자(Gumsa)도 그 중 하나로, 몇 년 전만 해도 “연구의 독립성만 보장해주면 ‘네이처’지에 실을 훌륭한 논문을 쓰겠다”고 하더니만, 어찌된 게 하라는 연구는 안하고 만날 방귀만 뀌어댄다. 그 방귀에서 어마어마한 악취가 날 것은 불문가지인데, 반성은커녕 애꿎은 토끼만 닦달하고 있으니 큰일이다, 큰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