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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리 암탉

corgan 2010. 3. 21. 16:23
대부분의 닭은 무리를 이루고 사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드넓은 야생에서 자연스럽게 무리를 짓고 알을 낳는 환경을 조성해서 인간을 먹여살릴 계란을 조달하기는 힘들 것이다. 기업적인 산란용 양계장에서는 보통 닭장 하나에 9~12마리 정도의 암탉을 가둬놓고 계속 알을 낳게 한다. 닭 입장에서는 지극히 잔인한 환경임이 분명하다. 인간이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 이외에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암탉 각각의 계란 생산성을 높여 그나마 적은 생명이 희생되게 만드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뮤어 교수는 (이런 인도주의적 취지였을지는 모르겠으나) 계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산란용 암탉(산란계) 품종 개량법을 연구했다. 역시 인위선택을 통해 계란을 잘 낳는 암탉을 대를 이어 선별해내는 법이 좋을 듯 싶었으나, 그는 구체적으로 조금 다른 두 가지 방법을 실험해봤다.
  1. 양계장의 각 닭장에서 제일 알을 많이 낳는 암탉 한 마리씩을 뽑아 번식시키기를 반복하는 방법
  2. 양계장의 모든 닭장 중에 제일 알을 많이 낳는 닭장 하나를 뽑아 그 안의 모두를 번식시키기를 반복하는 방법
인위선택의 단위가 암탉 개체이냐, 닭장이냐의 차이를 둔 것이다. 몇 세대에 걸쳐 이러한 인위선택을 반복하면 과연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얼핏 생각해보면 첫 번째 방법이 효율적일 것 같다. 가장 뛰어난 개체를 직접 선발해서 우수한 형질을 씨내림하는 것이 좀 더 좋지 않겠는가. 반면 두 번째 방법은 아무래도 무임승차자의 폐해(?)가 걱정되기 마련이다. 운좋게 닭장 안의 암탉 두세 마리가 우수한 놈이었다면, 나머지 몇 마리의 암탉들은 별로 산란능력이 좋지 않아도 슬쩍 묻어갈만도 하다. 최고의 암탉을 뽑아 경쟁시켜도 시원찮을 판에 이런 비효율을 지켜보고 있다니, 이는 양계산업 발전의 심각한 장애물이자 산란계의 과도한 희생을 방조하는 비인도적 처사일지도 모른다.

뮤어 교수는 그렇게 여섯 세대 번식을 (아마도 대학원생에게) 시키고, 그 결과를 확인하였다. 첫 번째 방법을 반복 사용한 닭장의 모습은 놀라웠다. 왜? 그 아래 계란이 수북히 쌓여 있어서? 아니다. 닭장 안에는 있어야 할 아홉 마리 대신에 단 세 마리만 살아 있었고, 이들 세 마리도 온통 털이 빠진 상태였다. 이 안에서 암탉들은 서로가 서로를 물어 뜯으면서 피터지게 싸우다가 여섯 마리가 죽고 나머지 세 마리도 기진맥진한 것이었다. 결국 제일 알을 많이 낳던 최고의 암탉들은 남을 핍박하여 — 먹이를 가로챈다던가 자신의 활동공간을 넓힌다던가 — 자신의 생산성을 높인 암탉이었다. 이 인위선택의 과정은 이런 공격적이고, 수탈적인 속성을 극대화하는 과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서로가 만만하게 등쳐먹을(?) 대상이 없어지고 고만고만한 놈들끼리 모이자 막다른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

반대로 두 번째 방법을 반복 사용한 닭장은 어땠을까? 여기에선 아홉 마리 암탉 모두 건강했으며 여섯 세대 동안 계란 생산성도 매우 높아졌다. 첫 번째 방법과 달리 이 경우에는 남을 핍박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즉 매우 이기적인 속성을 지닌 암탉이 선택될 확률이 낮아진다. 이런 수탈적인 암탉이 존재하는 닭장에서는 다른 암탉들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닭장 전체적인 생산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불편한 환경 속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며 함께 생산성을 높이는 암탉들로 이뤄진 닭장이 선택되게 마련이다. 처음 단계에서는 무임승차자들이 끼어 살아남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세대가 흘러가고 선택이 반복되면서 무임승차자 비율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모두가 살아남은 아홉 마리 암탉들은 좁은 닭장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속성을 유지한 채로 생산성을 높이는 형질을 획득한 것이었다.

이처럼 경쟁과 선택의 단위가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극적으로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이것은 비단 계란을 낳는 암탉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 내용을 인간사회로 투영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임을 다들 아실 것이다. 암탉에게 시행된 인위선택이 효과를 발휘하듯이, 인간조직에서도 경쟁과 선택은 생산성과 복리를 증진시키는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어떤 경쟁과 선택의 규칙은 첫 번째 인위선택 방법처럼 황폐화한 조직과 사회만을 남기기도 한다.

많은 경우 일부의 비효율로 보이는 개별 요소를 제거하려고 조급하게 처신하는 것보다, 공존과 조화의 미덕을 보존하면서 함께 나아가는 것이 장기적인 생존과 성공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